"조선왕조실록"이란 무엇인가?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역사를 시간의 순서대로 기록(편년체)한 역사 서적입니다. 역사를 서술하는 방법에는 역사적인 사실을 시간의 순서대로 기록하는 방법인 편년체와 역사적 내용을 본기와 열전으로 나눠 기록하는 방법인 기전체가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이 구체적인 내용을 연대순, 시간순으로 정리해서 기록할 때는 편년체를 사용하고, 그 실록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할 때는 기전체로 사용합니다.
편년체로 기록한 대표적인 책이 "조선왕조실록"이고, 기전체를 사용한 대표적인 책인 "고려사"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1대 왕인 태조의 기록인 '태조실록'부터 25대 왕인 '철종실록'까지의 기록입니다. '1대 태조부터 27대 순종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으나 26대 왕인 고종과 27대 왕인 순종의 기록은 '고종실록', '순종실록'이 있기는 하지만, 이 두 책의 기록은 일제가 편찬한 것이므로 내용의 사실성을 인정할 수 없고, 왜곡되거나 빠진 부분이 많아서 "조선왕조실록"의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총 1,894권 888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종실록'은 52권 52책으로 '순종실록'은 4권 3책으로 되어있으며, 순종의 폐위 이후의 부록으로 기록된 것이 17권 3책으로 남아있습니다. 번역본은 남한본과 북한본, 두 종류가 있습니다. 북한본은 한자가 전혀 없어 권당 평균 500page 책 400권으로, 필요한 곳에 한자를 넣은 남한본은 430권으로 각각 출간되었습니다.
실록 편찬은 일반적으로 왕이 승하(사망)하면 다음 왕 대에 실록청을 임시로 설치하고 전왕 대의 실록을 편찬했는데, 그때 참고 문헌으로는 춘추관 시정기, 사초, '승정원일기', '의정부등록', '비변사등록', '일성록', 조보 등이 있었습니다.
춘추관 시정기는 각 기관에서 보고한 문서를 시간순으로 정리한 것이고, '승정원일기'는 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작성한 기록입니다. 사초는 사관들이 기록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과 그에 대한 평가입니다. '의정부등록'과 '비변사등록'은 의정부와 비변사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과 그 동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이며, '일성록'은 왕의 일기를 뜻합니다. 또 조보는 승정원에서 만든 소식지로 조정의 중요한 일을 알리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실록은 이러한 자료를 정리해서 춘추관의 관원들이 만든 책입니다. 이러한 편찬의 과정은 세 단계로 나뉘어서 완성하게 되는데, 먼저 자료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내서 1차 원고를 만드는데 이것을 초초라고 합니다. 초초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두 번째 단계를 중초라고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로 총책임자인 총재관과 도청의 당상들이 중초의 잘 못된 부분을 수정하여 완성한 최종본을 정초라고 합니다. 실록을 편찬한 뒤에 초초와 중초는 물에 씻어서 없애버리는데, 이를 세초라고 합니다.
완성된 실록은 중앙의 역사 봉안실인 춘추관에 보관하게 되고, 3부를 더 만들어 지방의 역사 봉안실인 사고에 각각 보관했습니다. 조선 초기의 4 사고는 춘추관, 중주, 전주, 성주 등에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 춘추관과 충주, 성주사고의 실록이 모두 소실되었으나, 다행히 전주사고의 실록을 전라도 태인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이 내장산에 숨긴 덕분에 소실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후에는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실록의 정초본을 만들어 춘추관에 보관하고, 4부를 더 만들어 강화도 마니산, 경상도 봉화의 태백산, 평안도 영변의 묘향산,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등 깊은 산속에 사고를 마련하여 보관하였습니다. 묘향산사고와 마니산사고는 각각 인조 대에 청나라의 침입을 겪으면서 전라도 무주의 적상산과 강화도의 정족산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 후로 실록은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의 4 사고에서만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이후 각 사고의 모든 실록은 조선 말기까지 완전히 보존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다시 큰 변화가 있었는데, 일제는 정족산사고, 태백산사고의 실록을 조선총독부로 이관한 뒤, 현재 서울대학교인 경성제국대학으로 옮겼습니다. 적상산의 사고본을 장서각으로 옮겼고, 오대산의 사고본은 1913년 도쿄제국대학으로 반출하였다가 1923년 간토대지진 때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2006년 초에 도쿄대 도서관 귀중서고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회수에 힘써 2006년 7월 도쿄대로부터 47권이 반환되었습니다.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적상산본은 1950년 6·25 전쟁 때 조선으로 옮겨졌고, 태백산본은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가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었고, 정족산본은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1929~1932년 경성제국대학은 태백산본을 1/4 축쇄판 888 책 한장본으로 30절을 영인 출간하였습니다. 1958년 태백산본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다시 1/8 축쇄판 48책의 양장본으로 발행하여 보급하였습니다.
북한은 1980년대에 조선왕조실록 번역 작업을 마쳤고, 남한도 1968년부터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민족문화추진회에서 1972년부터 번역 작업을 분담하여 1994년 4월에 종료되었습니다.
실록 중에서는 정초본이 완성된 후 내용이 추가된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선조시대 이후 붕당 사이의 정쟁이 치열해지면서, 정치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붕당들의 평가가 서로 차이가 있어 생긴 결과입니다. '선조수정실록', '현종개수실록', '숙종실록보궐정오', '경종수정실록'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 책들은 다시 작성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실록에 내용을 추가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날짜마다 새로 기록하지 않고 보충할 내용을 매월 첫날 기사로 만들어 한두 건씩 추가하여 작성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한편 '연산군일기'와 '광해군일기' 같이 실록이 아닌 일기라는 제목이 붙은 것도 있는데 이는 왕들이 쫓겨나 왕자로 강등되어서 치세 기간 동안의 기록에 실록이라는 제목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기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중에 '단종실록'의 경우 원래 '노산군일기'로 만들어졌으나, 숙종 대에 단종이라는 묘호가 올려지면서 표지만 '단종대왕실록'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본문 각 면에는 '노산국일기'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실 중심의 서술방식과 명분론적 시각, 당론곡필 등으로 한계가 지적되기도 하지만 조선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의 역사적 사실이 수록되어 있어 전 세계의 귀중한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입니다.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